동아리 운영과 번아웃 회고
요즘 바쁘다고 하루하루의 회고를 쓰는 것을 까먹고 있었는데 나중에 지피티가 내 생각을 정리해주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미루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리면서 온전히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었다.
나의 생각과 전하고 싶은 바를 글로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그 첫번째 글로 최근의 번아웃에 대한 성찰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천하무적은 한낱 아지랑이일 뿐"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느 위인의 철학서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고 그냥 만화 배가본드에 나오는 대사 중에 하나다...
주인공 무사시는 어릴 적 아버지의 학대와 주변의 무시 속에서 '강함'에 집착하게 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했고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 하기를 바랬다.
그런 무사시를 향해 최고의 검객 야규 세키슈사이는 천하무적은 한순간의 아지랑이이며 다가간듯 보이나 다가갈 수 없는것이고 허무한 것이라고 말한다.
무사시는 그 말을 통해 '천하무적' 이라는 말 자체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왜 지쳤는가
나 역시 비슷한 집착 속에서 사로잡혀 있었다. 최근에 나는 번아웃이 왔다. 교내 개발 동아리의 회장을 맡으며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다. 내가 속한 곳이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랬고 후배들이 성장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실력 있는 구성원들은 더 좋은 조건의 학회나 단체로 이탈 하고 있었고 신입들의 유입과 양성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교육을 맡아줄 인력도 부족했고 관련한 시스템이나 커리큘럼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학업과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 일들을 잘 해내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공동체를 잘 이끌고 싶었다.
그러나 이 두 방향이 점점 모순처럼 느껴졌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열정과 진지함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마음을 알아봐 줄 거라고 스스로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하던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활동들이 언젠가 나의 성공 경험으로 기록되길 바랬던 욕심.
그런 욕심들이 나를 더 깊은 번아웃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의미가 없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경험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동아리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의 생각과 온도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했다.
하나를 배웠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그 진심이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 것.
이러한 이유는 상대방의 니즈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냉철한 현실이 기반이 된다. 가슴 깊이 새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도전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의미를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실패도 많이 했다. 노력들이 허투로 된 적도 많았다.
- 과제 제출을 하나 포기하고 크래프톤 동아리 지원 사업 신청서를 하루 종일 공들여 쓰고도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 기획한 행사에 인원이 안차서 회장단 전체가 마음고생을 많이 한 적도 있었다.
- 예상 못한 변수들(장소 예약 불발 및 교내 건물 대관 불가 통보 등등..)이 생겨서 인생은 왜 이렇게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인가 한탄한 적도 있었다.
모든 경험이 무의미 했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행운처럼 찾아온 기회도 있었다.
- 별 기대를 안했던 현대모비스의 SW 우수동아리 선정이라는 결과가 외부 브랜딩을 도울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되었다.
- 동아리의 다음 세대를 맡길 수 있는 똑똑하고 열정 있는 친구들을 키워낼 수 있었다.
- 운 좋게 기획했던 행사에서 과거 동아리에 게임 개발을 주도했던 선배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분들도 과거에 우리처럼 세미나를 열었지만 점점 인원이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게임 개발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반이 되셨고 덕분에 굴지의 기업에 입사하고 지금도 그 시절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 8년이 지난 지금도 함께 GMTK 게임잼에 참여한다고 하시더라 )
마무리 하며...
욕심을 버려야한다. 어떤 활동이든 결국 한낱 ‘성과’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으로 본인만의 의미를 찾으면 된다. 왜 나의 진지함은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자책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질거라는 기대는 나도 모르게 품은 욕심일 뿐이다.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의 경험과 주변의 사람들일 수 있는데 말이다.
그 허상에 매달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기록과 진심이 언제가는 누군가에겐 큰 울림이 되기를 바라며 성찰을 마치려고 한다!